배를 만들고 싶다면
나무를 잘라 손질하고,
공구를 준비하고, 일을 분배하여 주되
일꾼들을 재촉하지는 마라.
대신 그들에게 무한한 바다에 대한
그리움을 가르쳐 주라.

- 생텍쥐페리 -




무한한 바다에 대한 그리움을 가르쳐 주라....
나는 항상 재촉하고 채찍과 당근을 주는것이 능사라고 생각했던거 같다.
완벽하게 일을 하는데 있어서는 한순간의 방심도 금물이라 항상 닥달하고
몰아치기만 한것 같다. 그것은 나 자신 스스로에게도 마찬가지 이다.
그러나 어디 사람들이 매사가 항상 완벽한가?
그렇지 못한것에 대한 보다 더 넓은 너그러움도 모자라고 그렇게 안된다는것에
대한 좌절감도 꽤 여러번 맛보곤한다.
그럴때 마다. 그래 다음번엔~! 하고 다짐을 하지만 궁극적인 목표 지향에 있어서
항상 뭔가가 부족함을 느끼곤했다.
그렇다 나는 가장 큰 그림을 그리고 그리워 하는것을 하지 못한 것이다.
크게 그림을 그리고 마음에 품고 스스로 의지를 표현해야 하는데 마냥 재촉하고
닥달하기만 하는 아주 쉽고 초보적인 삶의 방식을 택한것이다.
아...후지다 -_-;;;

이 생텍쥐페리의 글을 보면서 그래...나도 저런 무한한 바다에 대한 그리움을
가르쳐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해봤다.


PacificOceanGulls2006|08|2006: Pacific Ocean, Gulls. August 24, 2006. © "Copyright G Dan Mitchell".    keywords: pacific ocean fog bank gulls seagulls blue coast coastal california color photograp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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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볼수록 느끼는 것은 (젊을 때) 옳게 판단하고 옳은 것을 생각하려 노력해도
  나중에 보면 옳지 않은 것을 한 게 더 많을 수가 있어요."


배우 변희봉씨의 인터뷰 기사 중에 있는 말이다.
살아가면서 연륜 즉, 경험이라는걸 실감하는 때 중에 한가지가 저런 말을 들을때이다.
아직 나의 연륜에서는 나오기 힘든 저런말을 들을때 마다 정신이 번쩍 든다.
그렇다.....나는 아직 멀었구나..그런 생각과 함께.

열심히 옳은것을 향해서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나중에 보면 그게 옳은게
아닐수도 있다는게 이제 조금 아주 조금 알겠다.
순간순간 화를 억제하는거 조차 쉽지 않은 그런 상황이니 저렇게 멀리 넓게 볼 수
있는 시각이라는건 나에겐 아직 없다. 안타깝게도...
뭐 그러니 노력하는 수 밖에.

나중에 보면 옳이 않은거였더라~하는걸 줄여가는게 어쩌면 더 어렵고 한단계
수준 높은 다짐이리라.

* 원문
 http://news.khan.co.kr/section/khan_art_view.html?mode=view&artid=200803061000265&code=900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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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줄곧 혼자 살고 있다.
그러니 내가 나를 감시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수행이 가능하겠는가.
홀로 살면서도 나는 아침저녁 예불을 빼놓지 않는다.
하루를 거르면 한 달을 거르게 되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삶 자체가 흐트러진다.

우리는 타성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것은 생명이 요구하는
필수적인 과제이기 때문이다.
타성의 늪에서 떨치고 일어서는 결단이 필요하다.

저마다 자기의 일상생활이 있다.
자기의 세계가 있다.
그 일상의 삶으로부터 거듭거듭 떨쳐 버리는
출가의 정신이 필요하다

'살아 있는 것은 다 행복하라 (법언 잠언집)'중에서
조화로운 삶, 88P

하루를 거르면 한 달을 거르게 된다는 말이 너무나 사무친다.
그렇게 거른것들 때문에 전체 삶을 망쳐버리고 있는것이다. ㅜㅜ
매번 수없이 많이 타협하고 스스로 위로하면서 살던 나에게 있어서
지금 가장 중요한 말인거 같다.
새해....하루도 거르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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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퓰리처 피쳐 포토그라피상을 수상한 사진입니다..

2004년 소아암 진단을 받은 Derek Madsen 이란 10살난 아들을

2006년 5월 19일 땅에 묻힐때까지의 과정을 사진으로 담았네요..


2005년 6월 21일, 성공적인 골수 적출후 병원 복도를 뛰어다니며 기뻐하는 모습.
혈액 줄기세포 이식만이 그의 유일한 희망입니다..

 

2005년 7월 25일, 그녀의 아들이 복부 종양 제거를 위한 수술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고난 후 아들을 안고 있는 모습.

평범한 직장을 가지고 있는 엄마는 먼저 수술비 걱정이 앞섭니다..

그녀가 운영하고 있는 세크라 멘토에 있는 네일&태닝 샵에서 아들에 머리를 어루 만지고 있다.

그녀는 아들이 행복할수 있고 웃을수 있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하겠다고 말했습니다..

결국 소년의 어머니는 치료비때문에 그녀의 가게를 포기해야만 했습니다..

암수술을 받기 전날, 병원 입원 수속을 위해 병원에 왔습니다.

수술을 앞둔 아들의 마음을 이해하는 엄마는 병원앞에서 아들과 시간을 보냈습니다..

Derek 의 11번째 생일과 엄마의 40번째 생일 직후의 모습. 소년의 왼쪽에 손을 잡고 있는 형과(17살) 오른쪽의 엄마.

형은 동생을 데리고 병원치료를 다니곤 했습니다..

2006년 2월 의사는 엄마에게 집에 개인 간호사를 둘것을 권합니다.(아무래도 의사의 이말은 가망이 없다는 의미로 보여짐)

엄마는 아들에게 아무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아들에게 가망이 없다는 말을 하는 건 아들을 위해 아무 도움도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사진은 아무것도 아직 모르는 데릭이 엄마를 위로하는 모습.

아마 운전 면허를 딸 기회 조차 없을지 모르는 아들을 위해, 법을 무시하고 아들과 함께 거리에서 운전하는 모습.

이날은 처음으로 개인 간호사가 집에 온 날이자, 아들에게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걸 알게된날입니다..

치료를 받지 않으면 살기 힘들다고 말하는 엄마, 소년은 종양이 온몸에 퍼지는 것과 그에 따른 고통을 감소 시키기 위해서

방사선 치료를 받아야 합니다. 하지만 소년은 '난 상관 없어요. 집에 데려다 주세요, 내말 듣고 있어요 엄마, 난 끝났어요' 라고...


그녀는 언제나 아들의 몸에 주사할 무엇인가를 들고 다닙니다..

엄마 신디는 그의 아들의 시간이 얼마남지 않음을 알고 있는 그녀의 친구를 위로한다.

신디는 그의 아들에게 쓴 편지에서 소년이 얼마나 용감하게 병과 싸워왔는지 말하고,

그 편지를 반복적으로 아들에게 읽어줌으로서 그가 그 자신에게 닥친것을 이해할수 있기를 바랬습니다.

아들의 머리옆에 꽃을 놓은후 울고 있는 어머니의 모습. 옆에 신디의 친구들이 위로하는 모습.

아들의 몸이 너무 약해서 24시간동안 옆에 지키고 있는 어머니 조차 인식하지 못했습니다.

데릭의 남은 마지막 힘을 다해 걷고 있는 모습. 그의 종양은 위외 뇌까지 전이되었습니다.

진통제를 거부하는 데릭의 모습... 자신이 건강해지지 못한것을 엄마의 탓으로 돌리고 화를 내는 모습.

엄마는 아들을 진정시키기 위해 애쓰고 있습니다.

데릭을 돌보기 위해 잠을 거의 자지못한 얼마후, 그녀의 가족의 오랜 친구가 찾아와 아들의 장례비용을 돕는걸 이야기 하고 있다.

녀는 자신이 겪은 재정적인 고통을 다른 가족들도 겪게 하고 싶지 않아, 자선단체의 도움을 희망하고 있습니다.

암연구 단체에 들어가는 돈에 일부라도 그녀에게 기부되어 도움을 받을수 있기를 희망한다고..

그녀는 암연구단체의 연구가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다고 말합니다.

Relay of Benefit 이라는 행사에서 아들과 키스하는 모습. 옆은 6살된 막내딸.

녀는 자원봉사자를 모집하여 모금을 하고 있습니다.

그녀는 행사에서 관중들에게 자신의 아들이 얼마나 자랑스럽고 용감했는지 연설했습니다..

아들을 안고 있는 신디의 모습, 편히 잘수 있는 약을 투여하고 있습니다.

간호사가 있는 하루에 몇분을 제외하고 그녀는 하루종일 아들과 함께있었습니다.

밖으로 나가기 위해 아들의 휠체어를 밀고있는 모습. 그녀는 아들에겐 밖의 신선한 공기가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이것의 아들에게 마지막 여행이 될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녀의 감정을 자제하기 위해 애쓰는 모습. 그녀의 손에 들고 있는건 아들을 평화롭게 보낼수 있게 도와줄 진정제입니다.

그녀는 스스로 나는 내가 할수 있는 모든것을 했다고 위로합니다.

괜찮아 아들아 사랑한다 넌 정말 용감했어 사랑한다.. 사랑한다 사랑한다.. 아들아... 

그렇게 말하는 엄마의 품에서 데릭은 숨을 거두었습니다.

나는 영원히 내 아들을 잊지 않을 것이며, 나와 아들과 함께해준 많은 사람들을 기억할 것입니다.

그리고 남은 인생동안 우리 가족과 같은 사람들을 돕기위해 노력할것입니다.

2006년 5월 19일 캘리포니아의 장례식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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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eelsg 2007/11/26 11:50 Address Modify/Delete Reply

    데릭이 엄마에게 화를 내면서 탓하는 모습을 보면서 아...이 사진은 진짜구나 싶었다. ㅠㅠ

자전거들이 내 옆에서 혼자 쉬고 있었을 때,
그러니까 내가 아무도 없이 혼자
조용히 쉬고 있었을 때 나는 사실 행복했다.
나무들과 풀과 들꽃들과 바람과 구름과 연못,
그 모든 것에 둘러싸여 행복했다.
다만 그 행복을 누군가와 함께 나눌 수 없음 때문에
그 행복이 조금 움츠러들었을 뿐이다.
그것에 꼭 쓸쓸함이라고 바보 같은
이름을 붙여야 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 조병준 -


그래...그걸 꼭 쓸쓸함 혹은 외로움이라고 바보같이 이름을 부를 필요 없다.
조금 움츠러들었을 뿐이고 , 그 순간을 즐기고 행복해보자.



Title: lean on me..
Details: 366 x 500 pixels - 154.2kB - JPEG
By u c c r o w on Flickr   © All Rights Reserv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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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일회

좋은글귀들 2007/09/06 11:36 |
일기일회(一期一會)
일기 : 한사람의 일생
일회 : 단 한번의 기회
다도에서 나온 말로 사람을 대할 때는 그 기회가 일생에 한 번밖에 없다는 마음가짐으로 성의를 다하라는 뜻


일본식의 대접이라는게 조금은 부담스럽긴 하지만, 그 안의 오래된 깊은 의미들은 많은 감동을 준다.
일기일회...
많은 생각을 하게 해주는 말이다.
처음 저 표현을 안건 꽃보다 남자에서이다 ^^
뭐 다도에 그다지 큰 흥미를 몰랐었는데 저 표현을 보고서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다도라는거는 단순히 차를 따르면서 마시는게 아니라 한 삶의 방식으로 이해하여야 한다.
저 말이 정말 일상생활에서 살아가면서 얼마나 많은 생각을 하게끔 하는지...

일생에 한번
Once in a Lifetime!

나에게 있어서 당신도 일기일회!

茶道裏千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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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과 마주 서서 먼지를 털면
그 먼지가 전부 내게로 돌아오듯이
미움을 미움으로 대하면
그 미움은 반드시 내게로 되돌아온다.

- 잡하함경 -




조금 더 이해하고 또 이해하려 해도 나도 사람인 이상 미운 사람이 있다.
미워하고 싶지 않아서 그냥 무시하고 지냈다.
투명인간인양...그게 내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더이상 어떻게 내가 배려를 할 수 있으랴?
걍 포기하고 무시하고 서로 안 부딪치는게 최선이지 않을까?
그냥 미워하지 말고, 무시하자~

사용자 삽입 이미지
내가 어린 고등학생이였을때 그렇게 담임이 미웠다. 아마도 지금 생각하면 그때가 사춘기 였던거
같다. 그렇게 무시하고 미워하던 담임이 학교를
떠나게 되었다. 학교를 떠나서 학원으로 가는 담임..뭐 담임을 좋아하던 애들은 아무도 없었으니 걍 다들 무덤덤 했었다. 그래도 일년간 담임이였기에 그동안 감사하다는 카드를 드렸는데 그 담임의 반응이란게 참으로 실망스러웠다.

내가 거기서 깨달은건 '굳이 그렇게 착한척 하고 살거 없구나, 화해를 할 이유가 없을 경우도 있구나' 이다. 내가 그렇게 살려고 노력은 하겠지만 안되는것도 있다는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화해를 내가 먼저 시도한다고 해서 내가 잘난게 아니고, 내가 이기는것이 아니다.
꼭 받아주기를 바랄 필요도 없다.
그냥 내맘 편하게 살자는 이기심 그 이하도 이상도 아닌 가치인것이다

미워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서 이해해보고, 그 사람의 의도가 악의가 있는것이 아니라는거라고 아무리 아무리 머리로 이핼 해도 실행이 안되는 그런게 살아가다보니 점점 더 많아 지는거 같아서 조금 슬퍼진다. 별로 알고 싶지 않는 것들인데...



밉다고 이렇게 칼들고 복수를 꿈을 꿀 입장도 못되고 ㅠㅠ
걍 착하게 살아야지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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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칼럼] 떠나라, 그게 애국이다

1954년 19세의 이철호는 북유럽 노르웨이로 향했다. 그 나라가 정확히 어디 붙어 있는지도 잘 몰랐을 게다. 지금도 멀게만 느껴지는 스칸디나비아 반도를 그는 53년 전에 밟았다. 전쟁 중에 파편을 맞아 옆구리와 허벅지에 큰 부상을 입은 상태였다. 당시 의료지원단으로 한국에 온 노르웨이 의사의 배려로 치료차 갔던 것이다.

거기서 그는 40여 차례에 걸친 수술을 받고 건강을 회복했다. 그래도 아직 다리를 상당히 전다. 지금도 일주일에 한 번씩 물리치료를 받고 있지만 얼굴엔 언제나 웃음이 넘친다. 그가 한국에 있었다면 지금쯤 어떻게 됐을까.

최근 그와 오슬로 시내를 몇 시간 같이 돌아다닐 기회가 있었다. 많은 사람이 그를 알아보고 반갑게 인사했다. 그는 연예인 수준의 유명 인사다. 노르웨이엔 왕이 둘이라는 농담이 있다. 왕궁에 하랄 5세가 있고, 또 한 사람은 '누들 킹(라면 왕)'이다. 후자는 '미스터 리'란 브랜드로 이 나라에 라면을 전파하고 그 시장을 장악한 그의 애칭이다.

그가 이런 유명세를 얻기까지 얼마나 피눈물나는 노력을 했는지는 이 좁은 지면에 다 열거할 수 없다. 그에겐 신념이 있다. '노력해서 이루지 못할 것이 없다'다. 선친이 물려주신 이 신조에 따라 그는 온갖 역경을 다 이겨냈다. 그는 딸 셋을 두었다. 각각 요리사, 의사, 기자로 일하고 있다. 모두 유럽 남자와 결혼해 잘살고 있다.

노르웨이에서 여러 다른 한국인도 만났다. 한라그룹에서 일하다 8년 전 이민와 선박중개업을 하는 김호현(56)씨. 가족과 함께 온 그는 아주 만족해 했다. 약 40년 전에 왔다는 이해란씨도 있다. 현직 간호사인 그녀는 이 나라 남편을 만나 행복하게 살고 있다. '절규'로 유명한 화가 뭉크 미술관에서는 오슬로대학에 다니는 한 여대생을 만났다. 이들이 신(新) 애국자다. 한국을 떠나 살면 다 애국자다. 한국이 싫어 집 팔고 논 팔아 이민 간 사람도 애국자다. 이 비좁은 땅에 그만큼 여유 공간을 만들어 주었기 때문이다.

시험에 실패해 자살하는 학생은 더 이상 뉴스가 못 될 정도다. 강남 아파트값은 이미 세계적 반열에 올랐다. 길을 아무리 뚫어도 주말이면 주차장이 되기 일쑤다. 어깨를 부닥치고도 미안하다고 말할 줄도 모른다. 이런 문제들은 다 어디서 온 것일까. 대답은 간단하다. 좁은 땅에 사람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우리는 어려서부터 국방의 의무니, 납세의 의무니 하는 애국 교육을 받았다. 이제는 애국하는 법을 달리 생각할 때가 됐다. 나라 밖으로 나가는 것이다. 이 땅에서처럼 열심히 살면 어디 가도 굶어죽을 일이 없다. 영어나 그 나라 언어를 못해도 좋다. 생존의 상황에 처하면 말문은 절로 트인다.

국부(國富) 유출을 걱정하는 이들이 있다. 그러나 개방될 대로 개방된 지구촌에서 국부의 개념은 더 이상 국경에 갇혀 있지 않다. 아파트 판 돈을 들고 나가든, 빈손으로 나가든 상관없다. 이 피 터지는 경쟁을 조금이라도 덜어주기만 하면 좋다. 나가는 사람만큼 일자리 쟁탈전도 줄어들 것이다. 외국기업을 유치해 고용을 창출하는 것만큼이나 중요하다.

두뇌 유출이 우려된다고? 이 나라엔 인재가 넘쳐난다. 고급 인력이 빠져나가도 그 자리를 대신할 사람은 여전히 많다. 외국에 나가 보면 한국 사람만큼 머리 좋고 생활력 강한 이들도 드물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철호씨가 바로 그 증거다. 국적은 노르웨이지만 그는 여전히 한국인이다. 그에겐 평생의 꿈이 있다. 노르웨이의 뛰어난 해저 터널 기술을 이용해 거제와 제주도를 연결하는 프로젝트다. 지금도 이 꿈을 이루고 싶어하는 그는 명백한 한국인이다. 한국인들의 귀소 본능은 이처럼 강하다. 이런 점에서도 국부 유출이나 두뇌 유출은 걱정할 필요가 없다. 그래서 결론은 반복된다. 해외에 나가 사는 것이 신 애국의 길이라고.


심상복 국제부문 에디터
simsb@joongang.co.kr

http://news.joins.com/article/aid/2007/05/04/2920353.html


그래~! 결심했어!
떠나자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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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qjemvlf 2007/05/08 11:43 Address Modify/Delete Reply

    제목에 '떠'가 빠졌군요

  2. feelsg 2007/05/10 11:49 Address Modify/Delete Reply

    ㅎㅎㅎ 글쿤요..수정했슴다 ^^

The World is...

좋은글귀들 2007/04/27 11:41 |

The world is a tragedy to those who feel, but a comedy to those who think.
  - Horace Walpole



세상이 그런거 같다..
느끼는 사람에겐 비극이고 생각하면 코미디고..
나는 희비극속에서 어디로 달려가고 있는걸까?
한편으론 가슴시리게 느끼지만 막상 실천하진 못한다.
그렇게 3류인생을 살아야 하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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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은간다

좋은글귀들 2007/04/27 10:52 |

* 노희경씨가 쓴 글입니다.*

아직도 십센티는 더 클 것 같은 소년 유지태가 이제는 사랑을
조롱할 수도 있을 만큼 농익을 대로 농익은 여자 이영애와 커플이
되어서 러브 스토리를 들려준다는 것이처음부터 나는 억지스럽다고 생각했다.
어울리지 않을 것 같았다. 그리고 내 예상은 적중했다.
둘은 헤어졌다. 다행..이다

한때는 상우처럼..지금은 은수처럼.
이제는 기억도 아련한 첫사랑의 열병을 앓았던 때
나는 더도 말고 덜도 말고 꼭 영화의 상우 같았었다.
그처럼 유머를 모르고 눈치없고..맹목적이고 답답했었다.

지금도 또렷이 기억나는 장면하나. 비 오는 날 추리닝에 맨발에
슬리퍼를 신고 그의 집 창문 앞에서 오기를 부리며 떨고 있던
내 모습. 그 때 내가 사랑했던 사람도 은수처럼 표독(?)했었다.
꽁꽁 언 발을 번연히 보면서도 그는 끝끝내 제 방으로
나를 이끌지 않았다.

이별에 대한 선전포고를 이미 했으니 그뒤의 감정수습은 모두
내 몫이라는 투였다. 당시엔 그 상황이 너무도 서러워 코 끝이
빨개지게 울었었는데..이제 그 추억은 그냥...멋쩍을 뿐이다.
인생을 살면서 절대 잊혀질 것 같지 않은 장면들이 잊혀지고..
절대 용서될 것 같지 않은 일들이 용서되면서 우리는 여자로 혹은
남자로 성장한다. 누구는 그러한 성장을 성숙이라고도 하고
타락이라고도 말한다. 그러나 나는 다만 과정이라고 말하고 싶다.

하루에도 열두번씩 무조건 어른이 되고 싶던 비린 미성년 시절..
나는 찐한 사랑 한번에 여자가 될 줄 알았었고 실연은 절대로
안 당할 줄 알았었다. 이제는 그런 내 바램들이 당치않은 기대였던
것을 안다. 사람들은 언제나 당면한 입장에 서서 상황을 이해하는
생리가 있다. 상우의 나이를 지나 은수의 나이에 서니, 상우보단
은수가 이해되는 것도 그런 의미에서 순리다.

"라면이나 먹자".."자고 갈래"..라고 노골적으로 유혹하는 은수의
말을 이해 못하고 정말 라면이나 먹고, 잠이나 자는 상우는 어쩌면
처음부터..은수에겐 버겁게 순수한 남자였는지도 모른다.
조금은 날긋하게 닳은 여자에게 순수는 반갑지 않다. 순수가 사랑을
얼마나 방해하는지 모르는 사람만이 순수를 동경한다.
사랑이 운명이나 숙명이 아닌 일상의 연장선에 있다고 믿는 대개의
경험있는 사람에겐(사랑의 열정을 몇번씩 반복해서 느껴 본 사람)
순수는 정돈된 일상을 방해하고 그로 인해 사랑을 좀슬게 한다.

상우의 순수가 은수의 일상을 방해하고 사랑을 버겁게 느끼게 하는
요소는 곳곳에 있다. 늦잠을 자고 싶은데 상우는 제가 한 밥을
먹으라고 재촉하고..다음날 출근을 해야 하는데 새벽녘 서울에서
강릉길을 한달음에 달려와 포옹을 요구하며..맨정신으로 약속을
하고 찾아와도 안 만나줄 판에 술 취해 급작스레 찾아와 철문을
두드리고 소리를 지른다. 게다가 엉엉대며 울기까지...그 대목에
이르면 은수가 아닌 제삼자의 입장에서도 은근슬쩍 짜증이 인다.
저만 아프고 저만 힘들지. 어린 남자는 그렇게 이기적이다.

사랑만 하기에 인생은 너무도 버겁다. 다수의 사람들은 은수가
상우를 선택하지 않은 것이 현실적인 가치 기준의 잣대에
의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박봉에 초라한 개량 한옥에서
사는 홀시아버지와 매서운 시고모를 옆에 두고 치매를 앓는
할머니를 모셔야만 하는 정말 누가봐도 최악의 결혼조건을 가진
그 남자와 연애는 몰라도 결혼은 절대 할 수 없다는 계산이 은수에게
있었다고 말한다. 나는 그 이유에 반박한다. 은수는 그 남자의
처지보다 무료해지고, 생계가 치명적인 걸 이미 아는 여자에게
사랑만이 전부인 남자는 부담스러웠을 뿐이다.

이제 이 나이에 "사랑이...어떻게 변하니?" 라고 상우처럼 묻는
남자가 내게 온다면..나 역시 은수처럼 당연히 그 남자를 피해갈
것이다. 아직도 사랑이 안 변한다고사랑이 전부라고(직장마저 그만
둘 만큼) 생각하는 남자와 격한 인생의 긴 여정을 어찌 헤쳐나가겠는가.
은수와 상우의 결별은 그런 의미에서 너무도 다행한 일이다.

노희경

===========================================================

사랑이 변하냐는 그 질문에 대해서 항상 사랑을 하면서 고민한다.
사랑하는 사람이 변하는거지 사랑이 변하는건 아니라고 생각하다가도
사랑이라는 정의가 각각이 다르다면 보는 시각이 달라지니깐
변한거라고 생각하는걸런지도 모르겠고..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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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금술사 중에서
"자아의 신화를 이루어내는 것이야말로 이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부과된 유일한 의무지.
자네가 무언가를 간절히 원할 때 온 우주는 자네의 소망이 실현되도록 도와준다네"


늙은왕이 산티아고에게 해준말





자아의 신화를 이루고 싶지만 정말 내 자아의 신화가 무엇인지 조차 지금은 잘 모르겠다. -_-;
나는 그렇다면 지금 직무유기중이란 셈이다. 내 의무를 이루지 못하면서 권리나 자유를 꿈꾸다니..
대체 뭘 원하면서 사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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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 고승덕 변호사가 쓴글이랩니다.


글쓴이 : 고승덕

ㅇ 나는 외모에 컴플렉스가 있다. 아시겠지만, 대학교 때 고시 3개를 합격했다. 사법고시 합격, 외무고시 2등, 행정고시 1등, 그리고 서울대 법대를 수석 졸업했다. 학교 졸업 후 부모님께 큰 절을 했었다. 똑똑한 머리를 물려줘서가 아니라, 사실은 변변찮은 외모덕에 그저 고시에만 전념할 수 있게 해 줬기 때문에 감사하다는 의미로.

ㅇ 내 직업은 ① 변호사이면서, ② 방송도 하고, 3년 전부터 ③ 책을 쓰고 있다. 평생 소원이 1년에 1권씩 평생 책을 내는 것이다. ④ 글도 쓴다. 모 신문사에 경제기사를 1주일에 2개정도 쓴다. ⑤ 또 오늘과 같은 특강도 한다. 평균 1주일에 2회 정도. ⑥ 증권분야에서도 활동하고 있다. 운영하고 있는 사이트가 있는데 회원수만도 3만 5천명 정도 된다. 나름대로 홈페이지 관련 사업을 하나 구상중인 것도 있다. ⑦ 마지막으로 대학에서 겸임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ㅇ 이처럼 내가 하고 있는 일이 무척 많은 것 같고 어떻게 이걸 다 할까 생각이 들겠지만 다 가능하다. 이 중에서 한가지만 하더라도 힘들다고 하는 사